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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의 선진국 도시를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건설 사조는 '그린 어바니즘(green ubanism)' 이다. 도시, 마을, 건축, 건설에 대한 친환경적 관점으로 생태적 제한 안에서 살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근본적으로 생태발자국 지수1) 를 줄이고자 하는 도시건설 패러다임을 말한다. 녹색 문화도시이자 독일의 환경수도로 불리는 '프라이부르크(Freiburg)'는 자연과 하나 되는 쉼터로서 기능하는 그린 어바니즘의 생생한 사례가 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의 예를 통해 지속가능한 건축은 무엇이며, 도시의 회복과 정화 비전에 대해 알아보자.
프라이부르크는 독일 남서부 끝단에 위치한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속한 도시로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를 잇는 관문도시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흑림(黑林, 독일 남부지방의 독일가문비나무와 전나무 수종 등으로 구성된 거목의 울창한 삼림) 슈바르츠발츠(schwarzwald)의 영향을 받으면서 남부 독일의 거점을 형성한 이 지역에는 아름다운 관광지들이 산재해 있다.
프라이부르크는 일찍이 환경 관련 산업에 관심을 가졌기에 현재 환경 분야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도시가 될 수 있었다. 프라이부르크의 자연환경은 매우 우수한 편에 속하는데, 대부분의 독일 도시들이 흐린 기후가 보편적인 것에 반해 이곳은 풍부한 일조량과 청명하고 따뜻한 기후를 자랑하고 있어 태양열 이용에 용이하다. 도심 근처의 슐로스베르크 산과 도시 정상부를 이루는 샤우인스란트 산에는 풍력발전기가 설치됐는데, 멈춤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태양열과 풍력발전기는 다른 도시에서도 볼 수 있지만, 프라이부르크만의 특이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도시수로인 '베힐레2)'다. 로마시대 산물로 유일하게 유럽에 남아있는 이 도시수로는 흑림에서 발원한 물이 드라인잠 강을 거쳐 도시로 유입되는 통로가 되는데, 구도심에 위치한 간선수로와 작은 도시수로 베힐레는 통풍이 어려운 좁은 구도심에 맑은 바람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프라이부르크는 대체 에너지 활용뿐만 아니라 대중교통과 자전거 이용을 위한 기간시설 확충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도시교통에서 차량보다 보행과 자전거 교통이 우선되는 교통정책을 시행 중인데, 구도심지역에 자동차 진입금지 시스템을 도입해 차량으로부터 해방된 도심환경을 구축하고 있으며 약 160km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운영하고 있다. 시는 또 국철과 트램(노면전차), 버스를 하나로 연계하는 '레기오카르테'라는 이름의 환경승차권을 독일 최초로 운영하고 있다. 레기오카르테 한 장의 가격은 실제 대중교통이용 실비의 약 40% 수준에 불과해 시민들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프라이부르크는 자전거교통이 전체 교통량의 30%를 상회하는 도시, 도시인구보다 더 많은 자전거를 보유한 도시가 됐다. 또 프라이부르크의 환경정책은 에너지와 교통, 쓰레기, 공원녹지문제 등의 다양한 분야가 긴밀히 연결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프라이부르크는 지난 2004년 독일환경지원재단이 수여하는 미래지향적인 자치단체 부문에서 1등을 거머쥐었고 이듬해 2005년, 독일의 경제주간지와 시장경제연구단체가 50개 대도시를 대상으로 실시한 향후발전가능성 분야 평가에서도 1등을 차지하며 자타공인 '독일의 환경수도'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프라이부르크는 어떤 이유로 일찌감치 환경산업에 관심을 갖고 도시를 변화시키게 된 것일까?
프라이부르크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환경 도시로 발돋움하게 한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인프라와 산업시설이 초래한 환경적 악영향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1960년대 프라이부르크 시민은 급격한 공업화가 야기한 산성비로 인해 그들의 긍지이자 자부심이었던 흑림이 서서히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결정적인 계기는 제4차 중동전쟁으로 에너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조된 1974년, 연방정부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3) 는 프라이부르크 근교 비일 지역에 서독의 20번째 원자력발전소 건설계획을 발표한 일이다. 건설예정지의 농민들은 방사능의 오염가능성과 추가적 기온상승에 따른 지역특산 와인 생산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 스스로 주체가 된 '대량소비생활에 대한 반성(자가용의 무분별한 이용이나 전력 사용을 자제하자는 일상생활에서의 에너지 절약 및 환경보호실천운동)' 움직임이 일어나게 됐고, 이를 통해 환경과 생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흑림 지역 내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시민운동은 생활환경과 습관을 개선하기 위한 녹색대안운동을 촉발해 1975년 비일 원자력발전소 계획을 백지화했을 뿐 아니라, 환경적 자각을 실천적 참여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프라이부르크 시의회는 1986년 만장일치로 원자력의 영구폐기를 결정했으며, 같은 해에 독일 내 대도시 중 최초로 환경보호부서를 설립했다. 1990년에는 환경부시장제도를 채택해 행정의 효율화를 꾀했다.
즉,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건강한 도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다소 불편하더라도 자신들의 삶을 바꾸어나갔다. 좀 더디더라도 이해집단 모두가 참여하고 토론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왔고, 도출된 합의는 꾸준히 실천해 왔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프라이부르크는 중세의 전통이 잘 보존된 도시에 첨단과학의 태양열시설이 부가된 독특하면서 중층적인 도시 경관을 갖게 됐다. 생태적으로 건강하면서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는 특별한 도시로 발전한 것이다.
1993년 프라이부르크 시의회는 보봉(Vauban)이라는 지역을 주거단지로 개발할 것을 의결했다 보봉은 '모델구역', 또는 '모델주거단지'로 지칭되는데, 풀어서 말하자면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로서의 주거단지'라는 의미를 갖는다. 보봉은 먼저 아래의 원칙에 따라 개발됐다.
1. 태양열을 주 에너지원으로 채택할 것
2.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체계를 구축할 것
3. 기존의 큰 나무들은 가급적 손대지 않고 개발할 것
4. 쓰레기 발생량과 물 소비량을 줄이는 개발을 할 것
5. 생태 순환을 위해 콘크리트를 활용하지 않을 것
위 원칙에 따라 보봉은 단지 내로 최소한의 차량만을 유입하는 정책들을 개발하고 실천했다. 지방정부는 보봉의 대중교통을 보완하기 위해 도심으로부터 트램 라인을 연장해 2006년 조기에 개통했다. 또 초등학교와 유치원, 시장, 상점 등 600여 개 일자리 모두 보행권을 기초로 배치했는데, 그 결과 전차역과 타운센터 등 주요 거점이 지역 내 어디에서나 15분 이내로 대중교통만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지역 내 차량을 감소하기 위한 정책도 눈길을 끈다. 개인 자가용을 보유하지 않은 거주민에게는 1년간 프라이부르크 대중교통 무료이용과 기차표 50% 할인 혜택도 주어졌다. 아울러 12대 이상의 공공 자동차 쉐어(나눠 타기) 차량이 지구 내 주민의 유사시 이동을 위해 상시 대기하고 있다.
또 보봉의 건축물은 에너지 절감과 관련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태양열 집열기 설치는 기본이며 외부와 연결된 고효율 벽체, 40cm 이상의 단열재 사용으로 실내 온도를 최대한 유지했다. 또 남쪽으로 큰 창을 내 낮 동안 햇볕을 넉넉히 받고 북쪽으로 작은 창문을 내 열 손실을 최소화했다. 거실의 환기와 온도 회복장치 등 내적자원을 이용해 1년 내내 안락한 온도를 유지하도록 했다. 또 태양광 설비시설은 주거 건물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건축물에 적용되고 있다. 주민센터와 근린 주차장 등에도 자체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아울러 많은 건물에 옥상 녹화를 도입하고 옥상의 초지를 이용해 빗물 일부를 흡수, 저장했다가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노력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세계 각국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환경단체, 언론이 프라이부르크를 찾아 이 도시 곳곳에서 살아 숨 쉬는 그린 어바니즘을 공부하고 배우고 돌아간다. 프라이부르크를 찾는 발길이 늘자, 근래 이 도시에서 환경시찰 전문업체와 환경교육 분야 등 700여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다(2009년 발표)고 한다. 환경과 조화를 이뤘더니, 일자리는 덤으로 얻게 된 격이다.

프라이부르크는 도시다. 하지만 회색빛 도시가 아닌 녹색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도시다. 수십 년에 걸쳐 그린 어바니즘을 이룩한 프라이부르크는 지속가능한 주거단지를 계획하고 조성하고 있다. 도시라고 하기에는 '도시'가 주는 선입견을 모두 깨 버리는 프라이부르크의 아름다운 경관은, 회색 도시에 갇혀 사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 1) 생태발자국 지수는 인간이 지구에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의식주 등을 제공하기 위한 자원의 생산과 폐기에 드는 비용을 1인당 토지면석(ha)으로 환산한 것으로, 1996년 캐나다 경제학자 윌리엄 리스 등이 정립한 개념이다. 지구가 감당해 낼 수 있는 생태발자국 지수는 1.8헥타르/1명이고 면적이 넓을수록 환경문제가 심각한 것을 의미한다. 녹색연대 등의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도 1995년을 기준으로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으며 2004년 기준으로 한국의 생태발자국 지수는 4.05헥타르이다.
  • 2) 베힐레는 프라이부르크 구도심 곳곳을 흐르는 작은 인공수로를 가리킨다. 중세도시 때의 관개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는 것인데, 구도심 수로들을 통칭해서 베힐레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엄밀히 구분하면 간선수로인 게베어베카날과 이에 비해 훨씬 작은 규모의 인공수로인 베힐레로 구분한다. 이 물들은 도심의 경사를 따라 특별한 장치 없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 3)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주(州)로 프라이부르크가 속해 있다. 프라이부르크는 약150㎢ 면적에 23만 명의 인구가 사는 작은 도시이다.(2009년 자료)
참고도서
  • - 그린 어바니즘 (티머시 비틀리 지음 / 아카넷)
  • - 녹색문화도시, 프라이부르크 읽기 (홍윤순 지음 / 나무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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